제 손으로 딸 애의 목숨을 끊는 아비가 어디에 있을까.
돌보지 않아 생채기가 벌어지고 곪아 터진 손으로 흙을 퍼내면서도 남자는 울지 않았다. 자신의 죄에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천으로 싸맨 아이는 가벼웠지만, 그 무게는 너무나 선연했다. 남자는 제가 파낸 아이의 자리에 아이를 쉬이 누일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의문만 들어찼다. 왜, 왜, 왜?
마지막 흙 한 줌으로 아이를 감싼 천이 보이지 않게 되고도 남자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마중 나오는 데에 시간이 걸릴까봐, 그 시간동안 아이가 외로워 할까봐 남자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해가 저물 때쯤에야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그에게는 무너지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아버지였다.
12시, 자정. 도시의 문이 닫힐 시간이 되자 도시에는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았다. 남자는 미리 챙겨 나온 알루미늄 재질의 은색 야구 방망이를 손 안에 꽉 쥐었다. 독립을 하면서 이 도시로 온 이후 8년 내내 이 곳에서 살았다. 바쁘게 살아 가족 외에 아는 이는 많지 않았지만 지리에는 빠삭했다. 폐허가 되어가는 중에도 남자는 늘 제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도시를 헤메었으므로, 도시의 지리라면 손바닥에 놓고 보듯 뻔했다.
가방끈이 짧은 남자이지만, 머리를 굴리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남자이지만 그는 생각했다. 이 척박한 도시에서 ‘사람’을 먹을 정도로 굶주렸으면서도 그 사람들은 왜 보호소에 오지 않는지. 자치행정부와 영웅은 여전히 사람들을 구해내고 있는데, 왜 그 도움을 받지 않는지. 혹시, 보호소에 오지 못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생존보다 중요한 이유가 뭐가 있지? -하다가, 남자는 생각해냈다. 지금이 일종의 재해 같은 생존의 문제라면, 원래의 사회에는 법에 의한 생존의 문제가 있었다. 보호소는 또 다른 사회이고, 원래의 사회에서 배척되는 이, 그러니까 사형수라면 보호소로 와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차라리 도시에서 버티며 그들이 살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남자가 피식 웃었다. 도시가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건물은 많지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좀 더 안전해 보이는 곳, 적어도 수 명이 함께 지낼 만 한 곳. 그렇다면 범위는 확 좁혀진다. 남자는 내내 돌아다니며 보았던 도시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리고 몇 채의 건물을 머릿속으로 추린 다음, 움직였다.
*
알루미늄 재질의 야구 배트가 깨진 콘크리트 바닥에 끌리는 것은 썩 듣기 좋은 소리는 못 되었다. 공간을 울리는 소음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았으나, 전기가 모두 끊겨버린 도시에는 빛이 없어 남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 일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저들끼리 낄낄대며 웃었다.
“왔냐? 좀 구해왔어?”
남자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언젠가 주웠던 손전등을 꺼내 딸깍, 누르자 환한 빛이 무리들을 비추었다. 그들 앞에는 검붉은 덩어리들이 있었다. 아마도, 사람이었던 살덩이였다.
“씨발! 이 새끼 손전등 주워왔나봐!”“오랜만에 쓸 만한 거 구했네, 새끼. 눈부시니까 끄고 가져와봐.”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는 남자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손과 얼굴은 그들의 것이 아닌 피로 붉게 물들어 징그러웠다. 남자는 그 얼굴들을 확인이라도 하듯 한 명 한 명 차례로 얼굴을 비추고, 손전등을 끈 후, 달려들었다.
깡, 야구 배트가 사람의 머리를 후려치는 소리가 경쾌했다.
치즈 홀스타인은 달리기를 좋아했다. 10살이 넘어갈 때부터 그는 육상선수를 꿈꾸었고, 그에게는 재능도 있었기에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중학교 때의 치즈는 수업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지만 육상부 활동만은 꼬박꼬박 참여했다. 좋지 못한 패거리와 어울려 다니는 중에도 운동만은 즐거웠다. 고등학생이 되어 브렌다와 사귀면서 담배며 술도 끊었고, 더욱 운동에 매진하면서 그는 국가대표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 꿈은 아이가 생기면서 접었다. 치즈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18살 소년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정’을 위한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후 6년 정도 치즈는 자신을 위한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돈을 벌었다. 그리고 브렌다의 취직과 함께 드디어 정말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
더 이상 경쾌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둔탁한 소리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남자는 피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지는 배트에 고무줄을 감아 천천히, 제 손에 묶어 고정시켰다. 일련의 행동을 하는 동안, 건물 안에는 거친 숨소리 뿐이었다. 남자는 입 안에 고인 피를 한 번 퉤, 뱉았다.
“애 아빠씩이나 돼서 쌈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야….”
배트가 공중에서 휙, 휘둘러지며 공기를 갈랐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씨발, 너희들 때문에.”
남자의 눈빛이 형형했다. 이성이 있는 사람의 눈빛이라기 보다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에 가까웠다. 남자의 배트가 피로 질컥이는 것들을 고기를 다지듯 몇 번이고 후려치고, 후려쳤다.
“너희들 때문에, 씨발! 개같은 새끼들아!”
건물 안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울렸다. 메아리치는 그 목소리는 분노라기보다는 차라리 통곡에 가까웠다. 이미 숨이 끊긴 덩어리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쯤에야, 남자는 건물을 벗어났다. 걷기가 불편해 제 다리를 내려다보니 누군가의 칼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남자는 허리를 숙여 칼을 뽑아내고 건물 안으로 던졌다.
피칠갑을 한 남자가 천천히 부서진 도시를 걷는다. 상처가 짓무르고 터진 손에 묶어둔 야구 배트가 또다시 질질 끌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날이 더웠다. 아이가 울었다.
https://twitter.com/OrdP_Story/status/599813588442714112 (손전등)
https://twitter.com/OrdP_Story/status/599821139783720960 (야구방망이)
https://twitter.com/OrdP_Story/status/602005521185386496 (머리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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