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08 꿈, 그의 10년 전





상대적으로 몸이 차가운 자신과 달리 따뜻한 동생의 몸에서는 늘 우유 향이 났다. 8살의 체다는 그런 동생의 몸을 끌어안은 채 시커먼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며칠 전 밤에 잠깐 장을 봐온다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닷새 전 아버지를 찾으러 다녀온다던 어머니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창 밖이 시끄러웠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 가끔 알 수 없는 것이 지르는 괴성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귓 속으로 파고들었다. 듣지 않으려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 소리가 무서웠는지 동생이 울었다. 빼액, 빼액, 위험을 예고하는 사이렌마냥 시끄럽게 동생의 울음도 덩어리 속에 뭉쳐쳤다.

 

콜비, 조용히. ?”

 

두 살배기 아이는 제 말을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한참을 더 울고서야 지친 듯 잠잠해졌다. 늘 사랑스럽게 분홍빛으로 물들어있던 뺨은 눈물자국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고 늘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커다란 눈망울은 그토록 서러울 수가 없었다.

 

아이가 지쳐 잠들자, 체다는 일어서서 다시 한 번 어머니가 남기고 간 쪽지를 보았다. 쪽지에는 단정한 글씨체로 콜비에게 줄 분유 태우는 방법과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먹는 방법, 그리고 잠시 나갔다 아침에 올 테니 동생과 그 동안 사이좋게 지내며 외출은 엄마가 올 때까지 삼가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분유는 어제 다 떨어졌고, 냉장고에 이제 먹을 것이라곤 통조림 뿐이었다. 자신이야 통조림을 먹어도 되지만 2살짜리 동생에게 통조림은 너무 자극적일지도 몰랐다. 체다는 자신의 책가방에 물건들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가족사진, 냉장고에 남아있던 통조림 몇 개, 안방 서랍 속 지갑 등.

 

다시금 달력을 보았다 닷새면, 충분히 기다렸다고 체다는 생각했다. 동생을 지켜야겠다는 일념 하에 닷새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소음 덩어리에 시달리는 것도 지쳤다.

 

책 대신 생필품을 넣은 가방을 메고 잠든 동생을 안아올렸다. 문을 잠그고, 문단속 까지 한 후에 체다는 혼란한 길거리로 발걸음을 디뎠다.

 

괴수가 나타난다는 도시의 밤 거리로.

 

*

 

새카만 소음 덩어리 속에서 체다는 제 동생을 꼬옥 끌어안고 걷고, 또 걸었다. 어지러이 얽힌 건물 잔해와 뿌연 먼지 사이에서 아직 여기가 현실이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동생의 온기 덕분이었다. 어린 동생은 제 오빠가 고생하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지 울지도 않고 얌전했다.

 

어빠아, 힘들어?”

아니. 괜찮아.”

나 걷구 싶어.”

지금은 말고, 콜비야. 여기서 조금 더 걸어서 트인 곳이 나오면 그때는 같이 걷자. 여기는 돌이 많아서 넘어질 수 있으니까.”

 

조금 더 걷다가 건물이 덜 부숴진 광장에서야 제 동생을 내려놓고 자그마한 손을 마주 잡았다. 어린 동생은 영특하게도 부모님이 어디 있냐는 등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콜비, 안 힘들어?”

어빠가 계속계속 안아줬어. 하나두 안 힘들어. 어빠는 아야 안 해?”

. 괜찮아.”

 

내내 어린 동생을 안고 걷느라 팔도 아프고 여린 발은 이미 물집이 잡혔다 터졌다를 반복해 따갑기 그지 없었지만 굳이 동생을 걱정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걱정인 것은 둘의 식량이 떨어져 이제는 비어버린 가방이었다. 등에 매달린 빈 가방의 무게는 배고픔의 무게가 되어 체다의 어깨를 짓눌렀다.

 

동생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 젖살이 통통한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내내 체다가 안고 왔을지라도 도시에 가득한 연기를 마시며 근 이틀을 걸어왔던 것은 2살 짜리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으리라. 동생을 데리고 먹을 것을 구하려 하다간 동생이 몸살에라도 걸려 앓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체다는 주변을 둘러보다 아직 부서지지 않은 상가를 발견해 그 곳으로 콜비를 데려갔다.

 

콜비, 여기서 잠깐 자고 있을래?”

어빠는?”

난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

어빠두, 엄마랑, 아빠처럼, 안 와?”

 

그 말에 체다는 제 어린 동생을 와락 껴안았다.

 

아니야, 콜비, 그런 거 아니야... 정말 잠깐 다녀오는거야. 그래, 콜비가 자고 일어나면 오빠가 옆에 있을게.”

엄마두 우리가 코오 하고나면 올거라구 했는데...”

오빠는 정말이야. 오빠가 콜비랑 한 약속 안 지킨 적 있었어?”

 

아이는 아아니, 하고 고개를 저었다. 체다는 아이의 작은 손을 쥐고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이렇게 콜비랑 오빠랑 약속. 오빠는 콜비 코오, 하고 나면 돌아오기로.”, 약속해써.”

그래, 약속한거야. 그러니까 콜비 얌전히 코오 해야 해.”, 어빠.”

 

아이의 대답을 듣고 상가를 나서면서 체다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제 동생이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오던 길에 입구가 무너진 편의점을 보았다. 조금 걸어야 하지만 입구만 조금 치우면 식량을 충분히 구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홀로 걷는 거리는 갖가지 소음으로 얽혀있었다. 괴수의 것으로 추측되는 알 수 없는 표효, 사람들의 비명소리, 또는 싸우는 소리, 도망치는 듯한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소리... 8살짜리가 견디기에 그 소리들은 너무나 거대해서 체다는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시끄럽고, 시끄럽고, 시끄러웠다. 시끄러운 것이 너무나 싫다.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기억과는 다르게 입구의 돌덩이들이 치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누군가가 다녀갔다는 뜻이겠지만 체다는 그 사람이 약간의 식량이라도 두고 가길 바라며 치워진 돌 틈으로 기어들어갔다.

 

편의점 안에 있던 것은 식량이 아니라, 식량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웃는 얼굴로 쇠로 된 파이프 따위를 집어 드는 것을 보자마자 체다는 황급히 몸을 돌려 나가려 했으나, 굶주린 사람, 아니 짐승들은 먹잇감이 도망가게 두지 않았다. 8살의 작은 몸뚱이 위로 무수한 아픔이 쏟아졌다. 가해지는 가혹한 폭력에 겹쳐지는 것은 자신과 어린 동생을 두고도 소식이 없었던 아버지와, 사실은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선명하게 보였으나 모른 척 하고 지나쳤던 어머니의 익숙한 머리카락.

 

여지껏 자신을 버티게 해주었던 동생의 작은 온기조차 없는 고통 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였다

아버지는 왜 우리를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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